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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총기난사] 미국 현실, 총기 사건 의 대하여.

PulseBunny 펄스버니 2019. 10. 31. 17:58

Hello guys! 펄스버니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오늘은 다소 무겁고 진지한 내용의 주제를 들고왔습니다. 바로 미국하면 빠질수없는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이민의 나라, 기회의 나라라고 알려져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도 말이죠, 하지만 미국이 꿈의 유토피아라고 볼수는 없습니다, 한국보다 위험한 경우가 대다수이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민의 나라, 즉 많은 인종이 섞여있기때문에 그안에 갈등은 이루어 말할수 없을만큼 많은 갈등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격돌하고있습니다. 트럼프정권이 들어서며 트럼프대통령이 내세우는 이민법강화는 이를 더 심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총기가 합법화입니다. 그말은 즉슨 민수용(민간용) 총기가 합법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져있으며, 어느 누구나 허가를 받기가 쉽고 총을 대량으로 구매하기도 합니다. 집을 지키기 위한 홈디펜스용, 범죄용, 사냥용 여러가지 목적으로 미국은 총을 미친듯이 사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할수없는 아주 끔찍한 사건들.. 총기 난사 사건 또한 빈번하게 발생하고있습니다. 오늘은 그주제를 다루어 볼까합니다. 미국의 민낯,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 1. 총의 나라, 미국.
  • 2. 역대 총기 난사 사건들.
  • 3. 비극적인 그날의 기록,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

 

 

 

 

 

1. 총의 나라 미국.

 

미국은 처음 청교도들이 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와서부턴 총은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당시 개척시대였던만큼

총은 생존 필수품, 아니 생활 필수품이였습니다. 총이 있어야 사냥도 하고 법과 질서가 없던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이 건국되기도 훨씬 전 부터 미국은 총과 함께 자랐습니다.

그만큼 총의 대한 이해도와 역사가 깊으며, 오늘날의 민간인들도 총에 대해 잘 알고있죠. 몇몇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총을 들려주며, 총을 다루는법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총과 땔래야 땔수 없죠. 미국은 전세계 총기시장에서 40%를 차지하고있습니다. 미국 한나라서만 40%를 차지한다면 과연 얼마나 큰것일까요? 

우리나라처럼 아예 총기가 합법이 아닌 나라들이 대다수인걸 포함하면, 미국은 그야말로 총의 나라, 컨츄리 오브 건 입니다. 과연 미국은 언제부터 이렇게 총을 많이 가지고 있게 된걸까요? 사실 총이 갑자기 확뿌려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시점, 1865년 4월 9일 이후를 기점으로 총기시장이 극대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1861년 4월 12일 부터 1865년 4월 9일 격정의 남북전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지다 끝내 북부진영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때 많은 화약과 총이 소비되었고, 현역총들과 아직 쓰지도 않은 총들이 즐비했습니다. 승패를 막론하고 이는 양 진영 둘다 의 문제였고, 어찌 처리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때 장교들은 전쟁이 끝나고 민병대가 해산할때 사병들에게 자신이 썼던 총들을 집에 가져가도 좋다고 하였고, 사병들은 전리품을 마구자비로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수출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만큼 총에대해 관심이 많았던 이들 덕분에 수입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총이라 하면 빠질수 없는 나라 미국이 바로 총의 나라가 된것입니다.

 

 

 

 

 

2. 역대 총기 난사 사건들.

자 방금 미국이 어떻게 총의 나라가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총이 많아지고 누구나 쓸수있다면 과연 무슨일이 일어날까요? 네.. 미국처럼 총기 난사 사건들이 일어날수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선 아주 많은 총기난사가 일어나고있으며 사상자 또한 많습니다. 과연 정말 그저 단순히 " 미국 " 이라서 일어난 일일까요?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한국은 현재 총기규제가 엄격한 나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지마 살인, 칼부림등의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총이 있어서 가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갈등과 심리적문제, 또 단순 살인충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총기난사가 미국이라서 일어난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단순히 미국이 인종이 많이 섞여있어 미친놈 소굴이라 그럴까요? 만약 한국에서 총기규제가 해체되고 합법화가 된다면, 우리나라 또한 미국과 같은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날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총기 규제가 어느정도 막아주고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미국에는 과연 어떤 총기사건들이 있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역대 총기 난사 사건 파일 목록 [ 1966 ~ 2019 ]

 

  • 찰스 휘트먼 사건 (1966.08.01)
  • 샌디에이고 맥도날드 총기난사 (1984.07.18)
  • 러버스 카페 총기난사 (1991.10.16)
  • 프론티어 중학교 총기난사 (1996.02.02)
  • 북할리우드 은행강도 사건 (1997.02.28)
  •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1999.04.20)
  •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2007.04.16)
  • 애리조나 총기난사 (2011.01.08)
  • 오이코스 신학대학 총기난사 (2012.04.02)
  • 콜로라도 극장 총기난사 (2012.07.20)
  •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2012.12.14)
  • 워싱턴 DC 해군기지 총기난사 (2013.09.16)
  • 산타바바라 총기난사 (2014.05.23)
  •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회 총기난사 (2015.06.17)
  • 테네시 주 해군 모병사무소 총기난사 (2015.07.17)
  • 버지니아 주 지역 방속국 생방송 총격 사건 (2015.08.26)
  • 움프콰 대학 총기난사 (2015.10.01)
  • 샌 버나디노 총기난사 (201512.02)
  • UCLA 총격 사건 (2016.06.01)
  • 올란도 나이트 클럽 총기난사 (2016.06.12)
  • 포트워스 댄스교습소 총기난사 (2016.06.25)
  • 댈러스 저격 사건 (2016.07.07)
  • 오스틴 총기난사 (2016.07.31)
  • 펜실베니아 마트 총기난사 (2017.08.06)
  •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2017.10.1)
  • 텍사스 제일 침례교회 총기난사 (2017.11.05)
  • 란초 테하마 초등학교 총기난사 (2017.11.14)
  • 플로리다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 고등학교 총기난사 (2018.2.14)
  • 유튜브 본사 총기 난사 (2018.4.3)
  • 테네시 와플 하우스 총기난사 (2018.4.22)
  • 텍사스 산타페 고등학교 총기난사 (2018.5.18)
  • 인디애나 노블스블웨스트 총기난사 (2018.5.18)
  • 메릴랜드 캐피털 가제트 총기난사 (2018.6.26)
  • 플로리다 E스포츠 대화 총기난사 (2018.8.26)
  • 피츠버그 총기난사 (2018.10.27)
  • 캘리포니아 벤추라 펍 총기난사 (2018.11.07)
  • 시카고 머시 병원 총기난사 (2018.11.20)
  • 덴버 다운타운 총기난사 (2018.11.20)
  • 일리노이 오로라 총기난사 (2019.02.16)
  • 뉴욕 브루클린 총기난사 (2019.7.27)
  • 길로이 마늘 페스티벌 총기난사 (2019.07.28)
  • 텍사스 월마트 총기난사 (2019.8.3)
  • 오하이오 데이턴 총기난사 (2019.08.04)
  • 텍사스 오데사 총기난사 (2019.08.31)

 

 

 

총기사건은 현재로부터 까마득히 옛날은 1966년부터 현재인 2019년 까지도 총기사건은 끊이지 않습니다.

또 이 목록들을 자세히 보시면 총기 난사 사건들은 1984년부터 현재까지 단한번도 멈춘적 없이 계속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목록들은 공식적으로 올라온 뉴스와 기삿거리들이지만, 비공식까지 포함한다면 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있음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정말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며 많은 이들이 죽었음을 보여주는 목록이라 참 아타깝습니다..

이중에서 안타까운 사건을 하나 꼽자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던 한명이 일으킨 바로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입니다.  그는 한국인이였으며 정말 충격적인 사건을 펼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32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다쳐 총합 61명이 이사건에 휘말렸었습니다. 사망한 32명에게 진심어린 애도를 표하며 다친 29명에겐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까지도 총성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있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도대체 이런 끔찍한 버지니아 공대 난사 사건은 왜 일어 난걸까요? 과연 그곳에선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3. 비극적인 그날의 기록,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

 

 

 

 

Virginia Tech Shooting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 버지니아 폴리 테크닉 주립대학교

 

사상자 32명

부상자 29명

 

사건 이후 범인은 현장 자살

 

 

 

 

 

 

무기입수과정

 

당시 2007년 버지니아 주에서는 총기규제가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빈틈이 많았는지 알수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2007년 2월 2일 당시 범인은 인터넷으로 발터P22(권총) 을 구매하고 권총은 일주일 후인 2월9일에 배송되었습니다.

버지니아 주 법으로는 당시 합법적인 경로였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이후 3월 13일에는 글록 19과 9mm 파라벨럼 탄을 50발 사들이고, 3월 23일에는 모 인터넷 쇼핑사이트에서 10발들이 탄창 3개를 구입하고도 이후 여러차례 걸쳐 범행에 쓸 탄들을 구입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는 총 500여발에 달했습니다.

암시장도 아닌 합법적 인터넷 사이트에서 쉽게 총기를 들여온 일로써 이는 미국의 현실을 잘 보여주었었습니다.

담배사는것보다 총을 사는게 더 쉬울뿐이였죠.

 

 

 

범죄과정

 

 

1. 난사 사건 전, 특정인 2명 사살.

 

첫번째 총격은 당시 시작으로 오전 7시 15분이였습니다.

범인은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에 있던 에밀리 제인 힐셔의 방에 들어가 그녀를 쏴 치명상을 입히고

그 뒤, 총소리를 듣고 나온 기숙사 사람 대학원생인 라이언 클라크에게도 머리에 총을 쏴 즉사 시키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에밀리 힐셔는 총격을 받았지만 살아있었고,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명상때문에 3시간만에 사망합니다.

 

일부 매체에선 에밀리가 범인의 여자친구라거나 범인의 구애를 거부하여 사건이 발생한것 처럼 알려졌지만, 이는

명백한 루머입니다. 경찰의 수사결과 에밀리 힐셔는 범인이 누군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총격을 받고 사망한것이죠..

 

이후 에밀리의 룸메이트인 헤더 하우가 7시30분에 기숙사에 왓을땐 이미 경찰들이 출동하여 상황을 파악하였던 중이였으며 하우는 경찰에게 에밀리의 남자친구인 칼 던힐이 2주전에 총을 가지고 사격연습을 하고 있었다는걸 봣다고 증언하여 의도치않게 수사에 물을 흐리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흔한 치저에 의한 살인 사건이라고 인식하고 에밀리의 남자친구인 칼던힐을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차를 타고 집에 가던 칼던힐의 신변을 확보한뒤 심문을 시작했습니다.

 

 

 

2. 난사사건.

 

경찰이 진짜 범인이 아닌 다른사람을 심문하는동안, 범인은 2차 범행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는 조승희가 난사 사건을 일으키기 전이였고, 2차 범행이 벌어질때까지 2시간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범인이 이 사건에 대한 편지와 사진을 넣은 소포를 방송국에 부치느라 우체국에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보하기 위해서지요 , 발송시간은 오전 9시1분으로 기록되어, 방송에서 보도한 범인의 사진이 여기에 들어있던겁니다.

 

이때 학교측은 총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기숙사가 대학과는 떨어져 있었기때문에 학교전체에 비상사태를 발령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당시 경찰은 범인이 도주했다고 판단했고ㅡ 주변에 공격 대상이 될수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에 경찰들을 파견했습니다.

정작 바로 옆인 버지니아 공대는 조용했죠.

 

이러한 한교측의 조치는 끔찍한 결과를 초례했고, 두번째 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체국에 다녀온 범인은 배낭에 물건을 챙겨서 노리스 홀 에리어부터 갔습니다.

 

그가 챙긴 물건은 다음과도 같습니다.

 

  • 체인과 자물쇠 그리고 망치
  • 전투 나이프
  • 권총 두정
  • 10~15발들이 탄창 9개
  • 여분탄약 400발

 

이때 노리스홀로 향한 그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사슬로 감아 자물쇠로 잠가놓고선 끔찍한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강의실을 돌며 총을 난사 했는데, 206호 강의실에서는 그를 막아서는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를 죽이고, 강의 실에 있던

학생들에게도 총격을 가해 9명을 살해하고 2명을 부상 시켰습니다.

이 총격 직후 911에 신고가 들어갔지만 그리고는 그는 옆강의실로 자리를 옮겨 비숍강사를 포함하며 4명을 살해하고 6명을 부상시킵니다. 이후 여러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총을 난사했습니다.

 

총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책상과 칠판으로 바리케이트를 쌓아놓은 강의실도 있었지만 그는 이를 비집고 들어가 문너머로 총을 난사해 문 근처에 있던 사람이 죽거나 다친경우도 많고, 그는 총 174여발을 발사해 이곳에서만 30명이 죽고 29명이 다쳤습니다.

사망한 30명중 28명이 머리에 총격으로 죽고 사망한 이들 모두 3발 이상을 피격받았습니다.

 

오전 9시50분경 211호에 들어한 그는 여기가 막다른 길이라고 판단하였는지,

 

자신의 머리에 총을 발사해 자살하면서 상황을 종료되었습니다.

 

 

 

 

 

 

범인의 범행 동기

그는 충청남도에서 살다 서울로 거주하던 부모님이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 전형적인 한국 서민이였습니다.

미국현지에서도 동네사람들로 부터 평판이 좋았고, 세탁소를 경영하며 열심히 사는 소시민이였죠,

그의 누나는 명문 프리스턴 대학을 나와 펜타곤에서 일을 했습니다.

 

다만 그는 어렸을때부터 성격이 과묵하고 말하는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삼촌은 그가 열린 사회인 미국에 가서 자신감을 찾기를 기대했고 9살이였던 그는 낯선 미국학교에 적응하는것이 어려워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당시 영어를 못하던 그는 매우 조용했고, 그런 그를 학교에선 문제아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특수교육도 받기도했죠

그는 학교에서 돌아올때마다 다시는 학교에 가고싶지 않다면서 눈물을 흘린 여린사람이였으며, 그래도 그는 학교의 상담 프로그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으며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해냈습니다.

 

5학년이 된 그는 수학과 영어에 뛰어한 실력을 보였고 교사는 그를 다른학생들의 모범으로 삼을정도로 많이 성장했습니다.

아무도 이때부턴 그를 미워하지않았습니다.

 

당시 좋은 친구들도 많았고 이부분을 보면 처음부터 정신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이였다라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다음부터였죠.

 

중학교에 들어간 그는 심각한 따돌림을 당합니다.

그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조롱하고 중국에 돌아가라며 인종차별을 가했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선택적 무언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게됩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타나면 물건을 던지고 그를 넘어뜨리며 소리치며 비웃음을 일삼았습니다.

누군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않았습니다. 계속 불러도 대답을 거부하자 참다못해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낙제 점수를 주겠다는 교사의 경고에 마지못해 책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낮을정도로 자존감이 낮아졌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좋지않았죠.

 

룸메이트였던 학생에 따르면 대학교 때 여학생을 스토킹 했던적이 있다고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 룸메이트도 그가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가 룸메이트에게 젤리라는 상상속의 여자친구가 있고 그녀는 슈퍼모델 출신이며 어떤때는 젤리와 사랑을 나누고있다고 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을때도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같이 웃어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그가 여학생을 스토킹한다고 경찰의 신고가 들어오며 인상이 달라집니다.

그가 그냥 그여학생을 보기위해 갔다고 그냥 괜ㅊ낳은 애인지 보려고 했는데 꽤나 가벼운 여자였다고 말했답니다.

더군다나 본인 소개를 "안녕 난 물음표야 " 라고 소개해서 여학생이 그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나봅니다.

 

그는 말이 없었지만 페이스북 프로필을 통해 학생들과 교류했고 남들과는 뭔가 다른게 있는 사람이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룸메이트와 친한 어느 여학생 문보드판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대사를 써붙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여학생은 뭔가 심각하다고 이상한 낌새를 느꼇고 룸메이트와 대화후 신고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여학생에 따르면 여학생은 딱히 온라인 어느포럼에도 자기가 사는곳을 공개한적이 없다고합니다. 때문에 그가 뭔가 마음을 먹고 어디사는지 뒤지지않는 이상 알방도가 없었지만 그게 더 여학생을 걱정시킨것 같습니다.

" 그가 싸이코처럼 변해가고있어 " 라고 발언한것을 보며 이미 여학생은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있었습니다.

그이후 경찰의 신고를 받고 그는 더이상 여학생에게 접근할수 없었다고합니다.

 

그 후 그는 룸메이트에게 자신이 자살할지도 모르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룸메이트는 한국 당국에 신고헀습니다.

그리고 학교당국은 그를 정신감정을 담당하는 위원회로 데려가 우울증과 무감각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를 부정했지만 결국 정신건강센터에 수용되고 이후 성실하게 정신과 치료에 임한다는 조건하에 퇴원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이는 이후 사건에 시발점이 되었고, 그누구도 그를 공감하지않고 괴물취급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정신은 망가질때로 망가졌고 괴롭힘, 오해, 자존감 하락, 폭행, 남에게 거부당하는 치욕감등이 합쳐져

결국 그는 범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가 범행전 방송국에 보냈던 선언문을 살펴 보자면 이렇습니다

 

" 너희는 오늘을 피하기 위한 기회를 수없이 많이 가지고있었다, 나는 내뺄수있었지만, 너희가 욕보인 내 형제 자매들과 약하고 죄없는 동포들을 위해 이 일을 행한다. 너희 덕분에 예수처럼 죽는다, 목으로 쳐넣는 쓰레기와도 같은 괴롭힘들이 단지 너희들이 그럴수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다는게 화가난다. 너희는 고통을 느껴본적이 없고 모든것을 가졌지만 만족하지않았다. 시간이 다가오고있고 나는 행동했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

 

그뒤 카메라는 꺼지고

 

이렇게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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