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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공황] 미국 경제 위기, 대공황 시대에 대하여.

PulseBunny 펄스버니 2019. 12. 15. 00:36

hello guys! 펄스버니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저번시간에 이어 또다시 역사시간입니다! 하지만 유명한 미국의 한 사건이 있었죠, 바로 1920년대 초, 미국에 찾아왔던 경제 위기 사태, 대공황 시대가 있었습니다. 완벽히 같을수는 없는 상황이였겠지만, 우리나라에도 경제위기가 찾아 왔엇죠? 바로 IMF 사태였습니다. 좀더 세밀하게 보자면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 였죠. 이렇듯 경제 위기 사태는 전세계적으로 한번씩 찾아오기도 합니다. 현재 베네수엘라도 경제위기로 국가 자체가 무너져 버리는 그런 사태도 있었듯, 우리는 초 강대국 미국에 찾아왔던 대공황 시대가 어떤 순간이였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어떤일들이있었는지 한번 볼까요?

 

 

목차

  •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치명적이였던 경제위기, 대공황
  • 대공황 사태, 원인 불명?
  • 대공황 사태로 인한 영향들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치명적이였던 경제위기, 대공황

 

대공황

Great Depression

1929 ~ 1939

 

 

대공황 사태,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장기적이였으며, 깊게 스며든 경제 위기로 1929년 부터 1939년까지 지속되어왔습니다. 검은 목요일로도 알려진 1929 월스트리트 대폭락을 시작으로 생긴 그영향들은 사실상 세계의 모든 구석들에서 느껴질 정도로 역사상 거대한 경제적 재난중 하나입니다.

 

그런 1870년대와 1890년대의 같은 이전의 위기들에서 아직도 시장 가격들에 의하며 압박되었으며 , 인플레이션을 위해 조절 된 국내 총 생산은 5년안에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20세기의 대공황시기의 국내 총생산량은 아직도 10년후의 1929년 그수준 아래이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활동은 1929년 여름에 쇠퇴를 시작으로 1933년으로 봐서 국내 총 생산량은 25퍼센트 이상 떨어져 이전 4반분 세기의 경제 성장의 흔적을 전부 지워 버렸습니다. 산업 생간은 특히나 심각한 타격을 받았으며

50퍼센트로 떨어진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비교에 의하여 산업 생산은 1870년대에 7퍼센트와 1890년대의 13 퍼센트로 떨어졌습니다.

1933년 대공황의 깊이들로부터 1937년까지 조금씩 회복하게 됩니다.

 

이 확장은 엄격한 불경기를 빼고도 적요에 의하여, 또다른 경제 성장의 기간에 의하여, 따라졌습니다. 

그 일은 생산고의 이전 수준들이 통과된 1940년까지 있지않았고, 이 일은 어떤이들이 제 2차세계대전의 도래 없이 대공황이 얼마나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통계학의 결석에 학자들은 1930년대를 위해 실업률 평가했어야만 했습니다.

방랑자들이 이비율들이 드물게 높았다고 암시하면서, 국내 총생산에서 급격한 하락과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수프라인에 서있고 대지를 방할하는 일화거리가 증거가 되었죠.

 

그일은 1933년 실업률이 25퍼센트 위에 절정에 도달했고, 1940년대로 들어가서 14퍼센트 위로 남아있었다고 넓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아직 이풍모들은 당시 진실적인 고난을 과소평가 하였을것이며, 일거릴 찾는데 너무 낙담하게 된 이들은 실업자로써 간주 되려하지도 않았죠..

 

같이 자신들의 가족을 먹여살리는 순서에서 도시들로부터 시골로 이주한 이들도 전혀 간주 하지않기도 했습니다.

직업을 가진이들마저 자신들의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1920년대에 47시간에서 49시간의 평균적 근무의 주가 1934년 41.7 시간으로 떨어져버리고 1942년까지 42퍼센트와 45퍼센트에 머물렀습니다.

 

은행 시스템은 위기에 소문이 난 은행들로부터 자신들의 돈을 빼는데 서두른 예금자들이 서두를 동안 공황의 다수를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은행들은 이 압력 아래 실패하였고, 다른것들이 병합되는데 강요된 동안 1929년 과 1933년 사이에 미국에서 은행의 수가 35퍼센트로 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대공황이 다른것들보다 경제의 어떤 분야들에, 그리고 다른것들보다 국가의 어떤 지방들에 더욱 영향을 미치는 동안 전부의 분야와 지방들은 생산고에서 심각한 쇠퇴와 실업에서 날카로운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근로자 계급에서 집중되었어도 실업의 고난은 중산층 계급에서도 수백만명에 영향을 미칠정도로 암울했습니다.

농부들도 자신들의 생산고가 절반으로 치닿으며 고통을 겪었습니다.

 

또 대공황 당시 미국의 GDP는 60%가 증발해버렸으며 독일의 경우 노동인구의 44%가 실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대공황 이후 3년간 미국 시가 총액의 88.88%가 증발해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있는 세계적인 대 영향을 준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학계에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요 원인으로는 무절제한 시장경제의 근본적인 한계라는 네오케인즈언과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장으로 부터 우연히 소비가 줄었다는 우연성도 있고, 정반대인 직간접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던 정부 개입, 스무트 할리 관세법등이 원인이라는 이론등 여러가지가 제시되고있었습니다. 정부의 방임주의와 시장만능주의의 한계로 발생했다고 여러가지 가설이 나오고는 있습니다.

 

 

 

 

 

대공황 사태, 원인불명?

 

미국의 대공황 사태가 왜 서계 대공황으로 확산 되었는지 조차도 명쾌한 설명은 현재까지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우선적으로 미국의 대공황에 대해선 지출 가설과 수정된 통화가설이 있는데, 서로 배척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이 어느날부터 갑자기 소비를 줄이며, 현금보유를 늘려갔다 라는 식으로 설명 됩니다.

수요가 줄면 공급도 줄어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한것이죠.

이것은 흔한 불경기의 시작이며, 부적절한 거시적 대응으로 인해 큰 파국으로 이르렀다는것이 일반적으로 수긍되는 대공황의 원인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아닌 다란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는 현상이 왜 발생했는가, 그것은 전혀 다른 의문점입니다.

어쩌면 각 나라에서 사람들이 소비를 줄인게 우연히 시기적으로 딱 맞아떨어져 이런 파국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이라는것은 세계적인 사태를 설명하기에 적절치 않으나, 미국 대공황의 원인 역시 우연으로 설명하는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를 보면 알수있듯이 대공황의 전파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는 대단히 취약 한 상태입니다.

너무나도 큰 우연성과 원인모를 사태이기에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하는경우도 대부분이죠.

마치 나비효과처럼 우연히 빚어낸 비극.. 어떠한 오차가 또 다른 오차를 낳고 점점 커저 예측불허의 사태가 초례했다는것이 카오스 이론입니다. 과연 정말 대공황 사태는 카오스이론처럼 우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국제적, 미국의 비극일까요?

 

우연이나 카오스 이론들은 잠시 넣어두고 당시 시대상을 통해 원인을 추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라디오로 대표되는 미디어의 발달, 버블 경제가 있을수있고, 할부 시스템의 보급으로 인해 미국인들의 소비가 소득수준 이상으로 불어나고, 이것이 한계에 도달하자 소비가 다시 줄어든다는것이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제국주의 식민지 확장이 이미 한계상태였고,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제손실을 메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식민지가 필요했으나, 그것을 충족할수 없으니 재화 생산과 소비능력이 줄었다는 식입니다. 돈 더벌줄알고 팍팍썻더니 이제 돈이 안벌리는.. 그런 샴페인 일찍터뜨렸는데 아무일도 안일어나는 그런 일이죠.

 

하지만 여전히 대공황의 문제는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누구도 아직 이사태의 원인을 규명할수없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은 사태는 가치 중립적 관점또한 유지하기 어렵게 때문에 문제에 접근하는것조차 애를 먹는것 같습니다.

 

 

 

 

대공황 사태로 인한 영향들 

 

세계적으로도 대공황의 여파는 유례를 찾아볼수 없을정도의 영향을 끼쳤습니다. 경제 정치 사회 그리고 문화에 이르기까지 말이지요, 크나큰 위기감에 따른 민족주의의 부활과 민주주의의 침체 그리고 정치적 극단주의는 결국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비극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속에 각국은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게 됩니다.

 

우선적으로 미국은 당시 워런,허버트 정부에 걸쳐 11년간 재무장관직을 지냈던 앤드류 맬런은 경제대공황이 일어났을때, 주식청산, 기업청산, 노동자청산, 농민청산 을 하라는 식으로 나가 기업이나 서민들을 구제하기보단 구조조정과 균형 재정을 우선시 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이는 대공황이 장기화 되면서 농작물은 썩어비틀어지고 있는데 서민들은 한푼도 없어 음식을 사지 못하는 결과만을 초래하며 공황만 심화시킬뿐이였습니다 후버는 뒤늦게 맬런을 해임시키며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이미 수습이 늦어버렸습니다, 1932년 대선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당선 된후 지금도 회자되는 뉴딜 정책을 펼치기 시작되죠, 사실 뉴딜 정책의 효과는 집권 초기에선 강력했으나, 집권 중반기서부터 1937년의 불황으로 마무리 되어 아쉽게 끝났습니다.

여기서는 사실 학자간의 의견도 갈리는 부분인데 주로 시장 방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뉴딜을 돈만 낭비한 텅빈 정책이라 비난하고 재정긴축론자들과 타협하면서 재정지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폴 크루그먼의 견해도 있었습니다.

결국 불황을 끝내지못하고 새로운 불황을 가져왔다는 식이 되어버렸죠

 

한편, 바이마르 공화국은 대공황으로 1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1920년대 중후반에 점차 회복되던 겅제가 디플레이션으로 다시 붕괴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 이때 나치가 세상에 등장합니다. 나치가 집권후 빠르게 경제를 안정화 시키자 국민들은 나치에 지지를 보냈는데 사실 이때부터 참극이 예견되어있었습니다.

 

나치 자체가 원래 호전적이였지만 공황의 여파가 전쟁의 방아쇠가 되어버렸죠, 참고로 나치 정권이 경제를 안정화시킨것은 아우토반 구축 등 막대한 정부지출을 동반한 결과였습니다 그러자 30년대 후반에선 정부의 잔고가 바닥을 쳐버렸고 독일은 이를 오스트리아 강제 합병으로 돈을 메꾸게 됩니다.

 

당시 일본 제국은 1차 대전에는 유럽국가 끼리 싸우느라 중국무역을 실상 독점하여 나리킨이라는 벼락부자가 나올정도로 경제 호황을 누렸습니다만, 대전 종결후 다시 유럽국가들이 무역 전쟁에 뛰어들며 쌀소동을 시작으로 1920년 내내 경제 불황에 시달렸습니다. 공업화로 노동자들이 크게 늘었는데, 대전기에 크게 투자한 조선, 철상 등 중공업이 경쟁력이 따라가질 못해 수출이 지지부진하니 노동쟁의가 반발했습니다.

면사 주 수출시장 쿄 증권 시장의 폭락으로 같이 공황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세계 대공황의 얼마안되는 예외는 당시 신생국가였던 소련이였습니다.

1930년대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답지 않은 매년 10%가 넘는 경이로운 수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이는 스탈린의 가혹한 경제성정책이기도 있었지만, 20세기 초 공산주의 의 확산을 경계한 세계가 소련을 고립 시킴으로써 소련경제를 자력 갱생의 구도가 되었고 이게 전화위복이 되어 대공황의 영황을 덜 받았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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